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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문캠프는 2010년 여름 중앙대의 기업화와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문제 의식을 공유한 일군의 대학생들이 트위터를 통해 만나 결성한 커뮤니티이다. ‘자기계발담론’에  저항하는  ‘자기-교육’을 모토로 학생들이 직접 방학 때 마다 인문학 강좌를 기획 개설하고 있다. 2012년 2월 현재, 4번째 자유인문캠프 ‘사유, 감각, 상상!’에 14개의 강연이 개설되어 400여명의 학생이 수강 중이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커뮤니티는 많다. 하지만 동력을 잃지 않고 매 분기 지속적으로 행동해나가는 커뮤니티는 많지 않다. 1년 동안 4번의 강좌와 부수 행사를 이끌어오며 누적 수강생이 2000명 이상에 달할 만큼 성공적으로 캠프를 꾸려나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2월 1일, 올 겨울 가장 추웠던 그 날, 흑석동 중앙대학교 서라벌홀 8층에 위치한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자유인문캠프 기획단을 만났다.
 

▲ 처음 자유인문캠프를 트위터에서 제안한 문화연구학 박사과정의 최철웅씨.
 
“2010년 여름 중앙대의 기업화와 구조조정, 그리고 시위, 징계. 일련의 과정이 지나고 소강상태에서 학교 분위기는 무기력했습니다. 저항할 의지를 잃거나 무관심해진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와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먼저 생긴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의 모델을 따랐습니다.” 중앙대에서 문화연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최철웅씨는, 처음 자유인문캠프를 트위터에서 제안한 장본인이다. 그가 던진 트윗에 한 명 두 명 같은 생각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알음알음 모이기 시작했다.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곽동건씨는 그 트윗을 보고 기획단에 참여한 초기 멤버 여섯 명 중 한 명이다. “방학 즈음해서, 트위터에 ‘중앙대에서 재밌는 일을 꾸며보려 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 연락 달라’라는 글이 올라왔어요. 큰 뜻 없이 ‘와 재밌겠네요’ 라고 멘션을 보냈더니 회의 시간과 장소가 공지된 답글이 온 거에요. 딱히 하는 일도 없고 해서 첫 회의에 참석하고, 그렇게 기획단을 하게 되었어요.” 그는 신입생 시절부터 정당활동을 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복학 후 변해버린 학교의 모습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기에 우연찮게 온라인을 통해 돌파구를 얻은 것이다.
 

▲ 신문방송학과의 곽동건씨에게 자유인문캠프는 우연으로 만나 인연이 되었다.

“3개월 동안 어떤 목표가 있어서 ‘언제까지 기획을 하자’ 그렇게 회의를 하지 않았어요. 만나면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할까 단순히 이야기만 나누었어요. 그 사이에 점차 자유인문캠프의 취지와 방향이 결정이 되었고, 제가 생각했던 것과 일치되고 있음을 느꼈죠.”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 동안 가을을 기다리며, 기획단은 일반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적 배움을 알리고, 주변의 좋은 교수님들께 학교 수업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자는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강사 섭외의 어려움도, 학교 당국의 간접적인 견제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2010년 가을, ‘자기-교육 운동, 해방의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자유인문캠프가 열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세 번에 걸친 공개 강연에는 100명 규모의 강의실이 꽉 찼고, 자유인문캠프의 공식 트위터에는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팔로우를 신청했다. 성공적인 행사의 주최에 의혹의 시선조차 따를 정도였다. 배후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정당이나 사회단체가 행사를 돕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규모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당연히 배후가 있을 리가 없다. 굳이 배후가 있다면 파편화 되어있던 학생들을 연결해준 트위터가 아닐까. 처음에도 지금도, 기획단은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열명 내외의 인원인데, 새내기부터 대학원생까지, 중앙대 학생에서부터 다른 대학의 학생까지, 예술 전공에서 인문 전공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기획단에 참여한다고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만났는데, 의견 충돌이나 특별한 갈등은 없었을까? 
 

▲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김규백씨는 친구들이 군대로 떠나버린 캠퍼스에서, 외로이 떠돌다 자유인문캠프에 정착했다.

“없었어요. 이 일이 시즌 별로 진행이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합의가 되야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거에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7~8시간 동안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다가, 수시로 그룹채팅을 해요. 편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의견이 조정이 되는 거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갈등이 없을 수 밖에 없는 게, 다들 처음의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정치외교학과를 전공 중인 김규백씨가 대답했다. 그는 학내에서 정치활동을 하던 중, 자유인문캠프를 알게 되었고, 두 번째 자유인문캠프부터 기획단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획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모두들 대학의 기업화와 대학생의 탈정치화에 대해서 투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걸까? 소위 ‘운동권’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냐는 질문에 기획단 멤버들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물론 정치적으로 구체적이고 선명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두리뭉실하게 우리의 취지에 동의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할  수도 없고. 특히나 자유인문캠프를 꾸려나가는데, 모두가 엄청 높은 수준으로 단일한 문제 의식을 공유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예술대학 사진학과의 11학번 새내기인 성세희씨가 바로 정치적 목적보다는 학문적 목적으로 기획단에 참여하게 된 케이스이다. “대학에 오면서 전공 이외에도 교양 수업을 통해 사회문제나 현실에 대해서 배워보고 싶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 수업들이 그것을 충족을 시켜주지 못했어요. 그러던 중 계절학기 때 그나마 만족스러운 수업을 들었어요. 그 교수님께 대학에서 느끼는 공부의 소외감에 대해 말씀 드렸더니 자유인문캠프를 소개해주셨어요.” 실제로 성세희씨는 자유인문캠프에서의 경험이 이후 정규 수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큰 성과는, 그간 중앙대의 기업식 대학 운영과 취업에 중점을 둔 교육 과정에 대해 느껴왔던 불만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한다.
 

▲ 사진학과 새내기 성세희씨는 정규 수업에서 느낀 학문적 갈증을 자유인문캠프에서 충족할 수 있었다.

“저는 자유인문캠프에서 소식지 ‘잠망경’을 만들 때가 제일 좋았어요.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 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어요. ‘잠망경’ 소식지가 배포되자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학교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어요. 그간 조용했던 사람들이 비판의 글을 올리는 시도들이 있었거든요.” 더불어 성세희씨는 지난 1년간 자유인문캠프가 성공적이었던 이유 또한 그 지점에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문제 의식을 가졌으나 쉽사리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자유인문캠프가 하나의 소통구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질문에 김규백씨는 자유인문캠프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을 들었다. “돈에 초연한 게 잘 될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닌가라고 생각해요. 사실 수강생도 증가하고, 이름도 알려지면 수강료를 올린다 거나 할 수 있는데, 어쨌든 수강생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요. 이득을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학생들이 많이 생각을 하게 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수익에 집착하면 쉽지 않거든요. 수익이 나도 다음 활동을 위해 사용하구요.” 자유인문캠프는 대학 외부에서  진행되는  여러 인문학 강좌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강료가 책정되어있다. 그럼에도 학교의 유휴자원을 이용해서 강의실 대여료가 들지 않기 때문에, 강사들에게도 넉넉하게 강사료를 드릴 수 있다고 한다. 적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활동을 꾸려나갈 수 있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단순히 수강생이 많아지고, 망하지 않고 1년간 해왔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간 회의를 하면서 ‘이거 해보면 어떨까?’ ‘재밌겠다’ 이런 것들이 계속 쌓여있었어요. 그렇게 시도해보려고 했던 아이템들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거죠.” 곽동건씨는 양적인 성장보다는 기획단 내부에서 그간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 둘 이뤄가는 과정이 더 큰 성과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자유인문캠프에 대해 그간 가지고 있던 의문. ‘자발성’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열 명 남짓의 소규모 기획단이 방학마다 몇 백 명 규모의 강좌를 꾸리고, 이에 모자라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학기 중에 영화 상영회와 새내기 교양학교 등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은 이 활동이 그들이 진정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자유인문캠프 중 박해천 선생님의 강의 모습. 학점도, 성적도 주지 않는 수업을 모두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듣고 있다. 
 
“강사 섭외 할 때 전화 정도는 나눠서 하지만, 기능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때그때 서로가 부담되지 않는 선으로 조정하며 일을 나눠서 해요. 그래서 다들 자기 일 같이 모두가 리더인 것처럼 일을 하는 거지요. 바빠지면 서로가 조절해서 일을 더 하거나 기획단 멤버를 새로 뽑아요.” “오히려 강요가 없어서 더 하게 되는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권위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기획단 내부에서 모두가 똑같은 입장에서 똑같은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요인 인 것 같아요.” 최철웅씨는 오히려 직책을 나눠가지지 않고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성세희씨는 수평적인 조직의 문화가 자발성을 이끌어낸다는 발언을 해주었다. “본인이 할 수 있을 때, 여유가 있을 때, 부담이 없는 선에서 하고 있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곽동건씨가 덧붙여 말했다. 

 

처음으로 돌아가 네트워크에 대해서 물었다. 자유인문캠프의 설립 목적 중의 하나는 학내에 학교문제에 대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다른 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가진 조직들과 교류를 계속 하고 있어요.  돌곶이  포럼과  공동 생활전선같은 조직들과 같이 청년운동에 대한 집담회 행사도 했었구요. 학내에서도 연대해서 할 수 있는 단위들이 늘어났지요. 인문대 사회대 예술대 학생회라던지, 중앙문화와 같은 교내 진보 언론들과 안면을 트고 예전에 비해 더 많은 행동을 함께 하고 있어요. 기획단도 자연스레 멤버 교체가 일어나면서 서로간의 네트워크가 발생하고 있고, 강연을 하러 오시는 선생님들과의 네트워크도 활발해요. 다음 캠프를 기획할 때 도움을 받기도 하구요. 아쉬운 점은 수강생들 간의 네트워크에요. 강좌만 듣고 끝내는 게 아니라,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들끼리 더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네요. 그래서 수업 후 뒷풀이라도 많이 하려고요.” 더불어 학교 바깥에서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수 있는 제2, 제 3의 자유인문캠프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게 그들의 바람이었다. 이를 위해 자유인문캠프가 어떻게 운영이 되어왔는지 노하우가 담긴 매뉴얼이나 팜플렛 등을 만들 계획도 있다고 한다. “저희도 처음 강좌 기획할 때 했던 수고에 비해서 지금은 반의 반도 덜 드는 것 같아요. 그때보다 훨씬 적은 인원으로 더 큰 강좌를 만들고 더 큰 일들을 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모델을 보여주고, 좋은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모두가 설렘을 갖고 입학한 대학. 그 잃어버린 설렘을 찾기 위해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대학. 
 
자유인문캠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물었다. 학부생이든 대학원생이든 언젠가는 자유인문캠프를 떠나야 할 시기가 찾아오지 않을지, 처음의 목적의식이 유지될 것인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참여하는 강도는 달라지더라도 끝까지 갈 것 같아요. 지금처럼 열심히 못해도 조금씩이라도 도우면 유지되지 않을까요? 저희는 자유인문캠프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최소한 10년은 해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대학이 어떤 공간인가에 대한 담론이 가장 치열했던 2010년과 2011년을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즐겁게 지속적으로 하면서 통과해왔다. 지금의 자발성과 커뮤니티가 유지만 된다면, 영원한 자유인문캠프도 꿈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들은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있었다. 

기사 원문 : 대학생들이 만드는 성찰하는 대학, 블로터닷넷, 2012.02.13 
CC Youth 인터뷰 – 자유인문캠프 2012.02.01  
 
이 내용은 CC YOUTH인 깡보(@kbyhaha), _혜자(@heyja_)가 인터뷰 녹취를 하고,
현정(@hjsohn89_)이 사진을 찍고, 기사를_고투(@godugodu)가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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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Korea와의 새로운 인연, 훈남 폴란드 청년 토마스 초특급 인터뷰 유햐햐햐햐햐햐햐 
폴란드 청년이 CCKOREA 사무국에 찾아온 사연은? 

2012년 새해부터 CC Korea 사무국에 새로운 얼굴이 눈에 띄는군요! 바로 폴란드에서 온 훈남 청년, 토마스(Tomasz Wozniakowski)입니다.*^^* 지난 해 여름, Creative Commons의 Global Summit 이 폴란드에서 열렸습니다. 그 곳에서 토마스와 CC Korea는 소중한 첫만남을 가졌고, 그 인연으로 올해 1월 토마스가 CC Korea 사무국까지 방문해주었어요.
 
그래서 저희 CC Youth는 그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아져 이번 인터뷰 프로젝트의 첫번째 인터뷰이로 토마스를 인터뷰하였습니다. CC Poland 그리고 CC, 이번 한국에서의 경험에 대해 물어봤는데요, 지금부터 그의 대답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About CC Poland
 
Q. CC Poland에는 활동가가 3명 뿐이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폴란드에는 상근 활동가가 계시지 않는 건가요?
A. 네, 폴란드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세 분이 계신데, 그 분들은 각자 개인 직업을 갖고 계시고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하고 계세요. CC는 그분들이 하시는 여러 프로젝트들 중에 하나인 셈이죠. 여기 CCK는 이렇게 조직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하는데, 이것이 폴란드와는 다른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상근 활동가는 계시지 않고, 실질적으로 지금 그 세분은 ‘발룬티어’라고 할 수 있겠죠. 발룬티어는 말 그대로 자격의 의미일 뿐이니까요.
 
Q. 그럼 그분들을 위한 특별한 사무실 같은 공간이 있나요?
A. 아니요, 없다고 봐야하죠.
 
Q. 그럼 그분들은 어디서 활동하시나요?
A. 사실 많은 국가에서 CCK 사무국 같은 사무실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제니퍼님은 여기서 상근 직원으로 일하고 계시잖아요. 편안하게 머물 수 있고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좋은 공간도 있고요.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는 그들의 현재 (발전)단계를 보면 이런 사무실이 아직은 필요하지 않거든요.
   

▲ 폴란드 글로벌 서밋에서의 토마스. Photo by Jennifer Kang

About CC

Q. CC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A. 처음에 제가 CC를 본건 친구가 만든 웹사이트였어요. 제 친구가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요리법을 공유하고 사람들이 그 요리법에 대해 토론하는 곳이었어요. 이용자들은 자신의 요리법에 라이센스를 붙여 공개할 수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CCL이었어요.그 친구의 사이트는 “opensourcefood.com”이에요.
 
Q. 그럼 CC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관심이 생기던가요?
A. 그때 처음 CC를 보고 나서, 좀 더 알고 싶어서 직접 찾아보게 되었어요. CC가 무엇인지, CC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 공부해봤는데, CC가 미래에 있어서도 정말 좋은 아이디어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경제의 발전이자 혁신이라고 생각되었어요. 특히 인터넷에서의 공유에서요.  그래서 저도 발룬티어로 활동하고 싶었구요.
뿐만 아니라 전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작년에 폴란드에서 글로벌 서밋이 있었어요. 저는 그곳에서 CC와 관련되어 다양한 강의들을 들을 수 있었고, 또 CC Korea를 만났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구요.(웃음) 여기서도 느낀 것이지만 CC에 참여할수록 더욱더 관심이 생겨요. 그래서 저는 CC에 도움이 되고 싶어요.
 
Q. CC의 가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저는 CC가 미래의 인터넷 사회에 매우 적합하고 훌륭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또한 CC는 모든 경제가 함께 일하며 공유하는 것을 가능케 하죠. 특히 비상업적인 서비스들에 있어서 그랬고, 상업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자신의 콘텐츠를 공유하는 데 있어 조절하는 것, 어떤 식으로는 공유의 질적인 측면을 개선하는 것이 방법일 거에요. 또한 CC가 아티스트들이나 일반 사람들이 콘텐츠를 창작하고 그것을 사람들에 보여줌에 있어 혹시나 콘텐츠가 잘못 사용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없애줄 수 있고요.
요즘에는 혼자서 일하는 프리랜서들이 증가했고, 그들은 콘텐츠들을 공유하기도 해요. 여기서 CC가 해결책인거죠. CC를 통해 특히 인터넷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어요. 갤러리와 예술가들은 자신의 콘텐츠들을 대중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되었구요.
 
Q. 그렇다면 모든 것을 공유하자는 것이 토마스의 바람인가요?
A. 네, 모든 것이요. 하지만 예술가들, 즉 콘텐츠의 창작자들의 일부 권리를 지켜주자는 겁니다. 그게 제가 바라는 방법이에요. 특히 요즘 같은 인터넷시대에서는요.

▲ CC에 대해서 더 많은 걸 알아가고 싶다는 토마스 Photo by Du-hyun Ko

About Korea

Q. 일본, 중국,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많은데 특별히 한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저는 예전부터 다른 나라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조만간 어딘가를 방문하겠다고 항상 마음 먹었었죠. 그러한 이유로 교환학생을 지원했어요. 그때는 제가 여러 나라들을 선정하고, 성적이나 다른 외부경험 등에 관련된 서류들을 제출하면 다른 사람들의 성적에 따라 어느 나라로 갈지가 결정되었어요. 그때 결정된 나라가 한국이었던거죠. 그래서 2007년 경북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6개월 동안 있었죠.
 
Q. 교환학생을 포함해서, 한국에 세번째 방문이라고 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그저 이 나라가 좋으니까요!(웃음) 저는 한국에 자주 올 이유가 있었어요. 두번째 방문한 것은, 교환학생 생활 동안 친했던 친구들을 만나는 겸, 여동생이 한국에 오고 싶어해서 같이 왔었어요. 그때 서울, 대구, 부산, 설악산, DMZ에 갔었어요.
                     
Q. 한국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나요?
A. 한국음식이 정말 맛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김치 맛이 이상해서 별로라고 생각하고 먹지 않았는데, 이제는 김치를 좋아합니다. (웃음) 하지만 문제는 한국사람들이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의 구분이 없다는 거에요. 모든 게 똑같아요. 밥, 밥, 그리고 또 밥을 먹더라구요. (웃음) 우리는 저녁에 똑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아침이나 점심에는 시리얼을 먹기도하고, 토스트를 먹기도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죠. 그래도 이제 세끼를 밥으로 먹는 것에 익숙해지니까 괜찮더라구요.
저는 한국에 친구들이 많은 편인데, 친구들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들을 만날 약속을 잡는게 너무 어렵고 자꾸 미뤄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보통 유럽에서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때 당장 내일 혹은 모레로 시간약속을 잡는데, 한국에서는 2~5주 후까지 약속을 잡더라구요.
 

▲ 한국에 있는 2주 동안 토마스는 CC Korea의 발룬티어로서 다양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Photo by Du-hyun Ko 

About CC Korea

Q. 이번에 한국에 방문하고 나서 CCK에서 일을 해봤다고 들었는데,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것을 배웠나요?
A.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비록 2주가 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저는 이 곳에서의 경험이 정말 좋았어요. 이 곳에서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같이 보이지는 않았어요. 제 생각에 그들은 마음 편안하게 일을 하는 것 같아요.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굉장히 열정적으로 한다는 것이죠. 이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봐요.
이 곳에서 저에게 주어진 일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게 일했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제 휴가의 일부분이었고, 발룬티어로도 노력한 시간이었죠. 이 곳의 분위기도 마음에 들어요.
 
Q. CC Korea 사무국 분들은 어땠어요?
A. 음, 저는 CC 사람들을 이야기 하고 싶어요. 특히 프로젝트 리드인 윤종수님이요. 그 분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그는 글로벌 서밋에서 저에게 굉장히 큰 감명을 주었어요 그 때 이후로 제니퍼님도 만났는데, 사무국 분들 모두 매우 친절하고 절 반겨주셨어요. 발룬티어분들도 정말 잘해주셨구요.  
 
 
CC와 CC Korea를 생각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 그와의 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CC Korea와의 인연, 앞으로 꾸준히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CC Youth의 인터뷰 프로젝트의 첫 인터뷰이, 토마스였습니다! ^^

CC Youth 인터뷰 – Tomasz Wozniakowski (t.wozniakowski@gmail.com) 2012.01.11

이 내용은 CC자원활동가인 인터뷰_CC Youth, 영문 script 작성_제이슨(@swk887), 고투(@godugodu), 
한글 번역_현정(@hjsohn89_), 타이거(@jshot486),
편집 및 기사 작성_깡보(@kbyhaha), 디자인 편집_혜자(@heyja_)가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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